Posted by 서로 사랑해요★ on 11월 20, 2025 with 11 comments
안녕하세요.
이 시간에는 '천국 혼인 잔치'라는 주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혼인 잔치는 무척 경사스러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구원받는 것을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것으로 비유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장 1~10절 -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행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혼인 잔치에는 누가 있어야 합니까? 혼인 잔치가 이루어지지 위한 필수적인 요소라면 신랑과 신부 그리고 하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신랑인 아들과 하객인 청한 사람은 등장하는데 신부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초림 때에는 왜 신부가 등장하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신부가 6천 년 구속사업의 끝인 마지막 때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 7~9절 -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신랑이신 어란양과 더불어 누가 등장합니까? 초림 때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어린양의 아내'가 혼인 잔치에 등장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어린양의 아내는 누구일까요?
요한계시록 21장 9~10절 -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천사가 누구를 보여주겠다고 했습니까?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입니다. 그리고 누구를 보여주었습니까? 하늘 예루살렘입니다. 그러므로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는 하늘 예루살렘입니다. 계속해서 하늘 예루살렘은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갈라디아서에서 살펴봅시다.
갈라디아서 4장 26절 -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위에 있는 예루살렘을 누구라고 하였습니까? 이렇게 성경은 마지막 날에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신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 어머니를 신부로 두신 어린양은 누구이겠습니까? 어머니를 아내로 두신 분이니 곧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이렇게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께서 나타나시는 것에 대해 계시록 22장에서는 성령과 신부가 나타나신다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7절 -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19장과 21장에는 어린양과 어린양의 아내 또는 어린양과 신부라고 하였는데 22장에서는 성령과 신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도 아버지 어머니께서 마지막 때에 함께 나타나신다는 예언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에 아버지 어머니께서 나타나시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생명수 즉 영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하늘 아버지 뿐만 아니라 하늘 어머니를 영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신부이신 하늘 어머니는 누가 세워주시겠습니까? 성경은 하늘 아버지께서 친히 세워주실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사야 62장 6~7절 -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이 말씀은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런데 누가 예루살렘 어머니를 세운다고 하였습니까? 여호와 하나님, 다시 말하면 하늘 아버지이십니다. 하늘 어머니는 사람들의 추천에 의해서 세워질 수 있는 분도 아니며, 인품이나 지혜나 용모를 기준으로 세워질 수 있는 분도 아닙니다. 성경 예언대로 오직 하늘 아버지께서 친히 세워주셔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뜻을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도 알려주셨습니다.
창세기 2장 23절 -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누가 하와를 가리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까? 아담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으로서 장차 오실 예수님을 표상하고 하와는 하늘 어머니를 표상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재림 예수님이신 하늘 아버지께서 친히 하늘 어머니를 증거해주실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계속해서 성경은 하늘 어머니께서 어떤 분이신가도 예언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 20절 -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누가 하와의 이름은 알려주고 있습니까? 하늘 아버지를 표상하는 아담입니다. '하와'라는 이름의 뜻은 생명입니다. 이 말씀은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하늘 어머니를 알려주실 예언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말씀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알려주시고 세워주신 분이 바로 우리의 어머니이십니다. 이러한 예언대로 성령 하나님으로 오신 안상홍님께서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를 증거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오직 어머니를 통해서만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친히 알려주신 하늘 어머니를 끝까지 믿고 따릅시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주시는 영생 얻어 영원한 천국에 갑시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의 예언처럼 영혼의 위로와 생명수의 축복을 받길 바라며 팔레스타인 지방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찾아갑니다. 하지만 이곳은 구원과 거리가 먼 곳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처소 장소는 ‘예루살렘’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위의 이사야와 스가랴의 예언은 이 땅의 예루살렘이 아닌 하늘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하늘 예루살렘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도성을 뜻하지만, 또 다른 의미도 있습니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갈 4장 26~28절
사도 바울은 하늘 예루살렘이 구원받을 성도들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은 영의 어머니, 곧 어머니 하나님을 표상합니다. 예루살렘 어머니를 믿는 성도들을 ‘약속의 자녀’라고 칭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영생의 축복을 받을 성도들에게는 영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영의 어머니도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생각할 때, 어떤 행복이나 또는 두려움이나 여러 가지 인간적인 감정들을 가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보이는 어떤 육적 세계의 것은 잡힐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는 것이고 영의 세계 것은 뭔가 애매하기도 하고 모호하기도 하다.' 라는 이런 생각을 가져버리게 됨으로써 보이는 세계보다도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소망이 약하게 생각하게 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육의 세계에서 움직이는 힘의 근원이 보이지 않는 세계 속에서의 힘은 아닐까?'
우리는 이러한 관점에서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영적인 세계의 힘이 없이는 결단코 육의 세계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것도 존재하는 것이 될 수 있지 않느냐'
많은 사람들의 많은 비유와 많은 교훈을 통해서도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아랍의 두 상인이 장사를 하기 위해서 먼 사막의 길을 여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고 한 사람은 무신론자 였는데, 두 상인이 길을 한참 가다 보니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으로 주제가 되어 토론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이 있다"라고 하고 한 사람은 "없다"라고 하는 쪽으로 논쟁이 붙었습니다.
"있다"라는 쪽에서의 주장과 "없다"라는 쪽에서의 반박이 서로 만만치 않게 계속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두 사람은 밤도 되고 해서 사막에서 천막을 치고 거기에서 하루를 유숙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밤에 낙타를 다 줄로써 말뚝을 쳐서 매어 놓고 모든 짐을 풀고 천막 속에 몸을 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길을 떠나려고 보니 밤새 매어놓은 낙타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두 상인들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급하게 낙타를 찾았는데 이때, 무신론자가 낙타의 발자국을 발견했습니다.
낙타의 발자국을 발견하고는 큰 기쁨에 넘쳐서 큰 소리로 외친 것입니다.
"낙타 찾았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와서 낙타가 어디 있느냐고 하니까
"이 발자국 좀 보라 발자국을 따라가면 낙타가 있을 것이다"
그제서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대답하기를
"당신은 보이지 않는 낙타의 발자국만 보고도 있다고 믿으면서 어찌 삼라만상에 하나님의 수많은 발자국을 늘 보여주시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느냐? 낙타 발자국은 '낙타가 있다'라는 증거이고, 하나님의 흔적은 '하나님이 존재한다'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인데 어찌 하나님의 흔적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못하느냐?"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동녘 하늘에 아침 해가 솟아올랐습니다.
"저것이 바로 하나님의 발자국이다"
우리 주위에 보면 이와 같이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것을 믿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한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물질 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의 심령 속에는 보이지 않는 이면적 세계가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하나님이 이와 같이 천국이 존재한다는 흔적과 지옥이 존재한다는 흔적, 하나님이 계신다는 수많은 흔적들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Posted by 서로 사랑해요★ on 11월 13, 2025 with 7 comments
안녕하세요.
오늘 이 시간에는 '시대별 구원자와 새 이름'이라는 주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천하 범사에는 기한이 있고 또한 목적이 있습니다.
전도서 3장 1절 -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는 목적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도 자기 나름대로 다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도 뚜렷한 목적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성경을 통해 알아봅시다.
베드로전서 1: 8~9절 -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믿음의 목적은 영혼의 구원 즉, 영생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의 목적인 영생을 주시려고 6000년의 구속사업을 세 시대로 구분하시고 각 시대마다 각각 다른 이름의 구원자를 정해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하였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이라고 했으니 성부의 이름이 있고 성자의 이름이 있고 성령의 이름이 있다는 뜻입니다. 성부의 이름은 아시다시피 여호와입니다. 그리고 성자의 이름은 예수님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성령의 이름에 대하여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 시간에는 이 성령의 이름에 대하여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각 시대마다 누가 구원자인지 성부시대부터 알아봅시다.
이사야 43장 11절 -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성부시대에는 누가 구원자라고 하였습니까? 이 시대에 여호와 외에 다른 이름으로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까? 이 시대에는 성부의 이름인 여호와만이 유일한 구원자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시대가 바뀌어 성자시대가 되었을 대에는 누가 구원자인지 알아봅시다.
사도행전 4장 11~12절 -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성자시대에는 누다 구원자라고 하였나요? 예수님 외에는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시대가 성부시대에서 성자시대로 바뀌니까 구원자의 이름도 여호와에서 예수로 바뀐 것입니다. 그렇다뎜 성자시대로 바뀌었음에도 여전리 성부시대의 구원자의 이름인 여호와의 이름으로 구원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아닙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마다 각각 다른 이름의 구원자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들은 시간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성부시대에는 오직 성부의 이름으로 구원받을 수 있고 성자시대에는 오직 성자의 이름으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성부시대도 아니고 성자시대도 아니고 성령시대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자의 이름이 어떻게 되어야 하겠습니까? 성자시대에서 성령시대로 시대가 바뀌었으니 구원자의 이름도 바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성령시대 구원자의 이름에 대해 알아봅시다.
요한계시록 3장 12절 -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여기서 '나'는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새 이름은 예수님의 새 이름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이 예수님의 새 이름이 되겠습니까? 새 이름이라고 하셨으니 예수와는 다른 이름이어야 합니다. 이 새 이름에 대한 예언을 한 말씀 더 살펴봅시다.
요한계시록 2장 17절 -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이기는 자에게는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해 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돌은 실제 돌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돌은 누구를 표상하는지 베드로전서 2장에서 알아봅시다.
베드로전서 2장 4절 -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신약성경에서 돌은 예수님을 표상합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2장 17절의 돌 대신에 예수님을 대입하면, 돌 위에 새 이름은 예수님의 새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의 새 이름을 누가 안다고 하셨습니까? 받는 자밖에는 알 사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이름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 이름은 지금까지 세상이 알지 못하는 다른 이름이므로 받는 자밖에는 모른다고 한 것입니다. 이 새 이름이 바로 성령시대 구원자의 이름입니다.
다음으로 각 시대마다 누구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지 먼저 성부시대부터 알아봅시다.
이사야 43장 10절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성부시대에는 누구의 증인이라고 하였나요? 여호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부시대 구원자가 여호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시대가 바뀌어 성자시대가 되었을 때는 누구의 증인이 되라고 하였는지 알아봅시다.
사도행전 1장 6~8절 -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자시대에는 누구의 증인이 되라고 하였나요? 예수님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시대가 성부시대에서 성자시대로 바뀜에 따라 구원자가 여호와에서 예수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각 시대마다 그 시대의 구원자를 증거하는 것이 증인의 사명이에요. 이제는 성부시대로 아니고 성자시대도 아니고 성령시대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시대에는 누구의 증인이 되어야 할까요? 당연히 새 이름의 증인이 되어야합니다. 왜냐하면, 새 이름이 성령시대 구원자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