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_10_16
[하나님의교회]영생의 길 유월절
<아몬드> 책을 읽고 마음을 배우다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 책을 읽었어요. 요즘 저에게 필요한 책이 아닐까 하고 다시 읽은 책인데 참! 탁월했던거 같아요 ㅎㅎ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열여섯 살 소년 선윤재의 성장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려낸 소설이에요. 윤재는 뇌 속의 편도체(아몬드라 불리는 부분)가 비정상적으로 작아, 분노와 두려움, 슬픔 같은 기본적인 감정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데요. 그래서 엄마와 할머니는 윤재에게 감정을 알려주면서 꿋꿋이 키웠어요. 하지만 13살 생일 아침, 사고로 두 분 모두 돌아가시게 되고 혼자 남게 돼요. 그렇게 혼자가 된 윤재 앞에 곤이가 나타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돼요.
곤이는 누가 봐도 문제아예요. 어릴 때부터 아빠한테 맞고 자라서 그런지 폭력성이 짙고, 매사에 삐딱하죠. 그런데 사실 곤이도 윤재만큼이나 불쌍한 아이라고 생각해요. 곤이는 엄마 얼굴도 모르고 자라거든요. 친엄마는 곤이를 버리고 도망갔고, 새엄마는 곤이랑 친형을 학대하다가 결국 둘 다 버렸다고 해요.
그렇게 전혀 다른 두 소년이 만나 친구가 되는 과정을 그린 성장 소설이에요. 윤재는 곤이를 만나면서 다양한 감정을 배우게 돼요. 분노, 죄책감, 행복, 우정까지요. 특히 윤재는 곤이와의 갈등 끝에 ‘가장 가까운 사이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죠. 윤재는 곤이 덕분에 감정을 배우고, 곤이는 윤재 덕에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게 돼요.
요즘 사람들은 SNS 속에서 하루하루를 나누며 살아갑니다. 친구의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고, 누군가의 여행기를 부러워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나는 왜 남처럼 살아가려 애쓰지?’ 하고요. 꼭 남들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꼭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을 무겁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공감도 마찬가지예요. 누군가의 감정을 느끼는 일이 꼭 같은 감정을 따라가야 한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진짜 공감은 그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어떤 상황에서 그런 기분이 되었는지를 이해해보려는 마음 아닐까요? 상대의 감정을 똑같이 느끼지 못해도, 그 감정을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태도라면 그게 충분히 공감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공감의 모습은 달라요. 감정을 조금 덜 느끼는 사람은 대신 상황을 차분히 살필 수 있고, 감정이 풍부한 사람은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죠. 어느 쪽이든 잘못된 건 없어요. 중요한 건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이해하려는 마음을 잃지 않는 거예요.
결국 우리는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늘 균형을 잡으며 살죠. 이성은 우리를 단단하게 하고, 감성은 세상을 부드럽게 만듭니다. 둘 중 하나만으로는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없어요. 공감도 그래요. 생각과 감정이 나란히 걸어갈 때,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조금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습니다.
비슷한 하루처럼 보여도, 각자의 마음엔 다른 온도가 있습니다. 그 다름을 알아차리고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게 진짜 ‘공감하는 하루’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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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_10_09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이름은?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행 20:28
여기서 친다는 표현은 양육하고 돌본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양육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양육하시고 돌보시는 교회는 '자기 피로 사신 교회'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 교회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어떤 기업이나 가게를 세우더라도 반드시 이름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도 이름이 있을 것인데, 그 이름이 무엇인지 성경을 통해 살펴봅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고전 1: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이름은 하나님의 교회 입니다. 다만, 교회가 세워진 장소에 따라서 '고린도에 있는'과 같은 지명이 붙은 것입니다.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갈 1:13
여기의 '나'는 갈라디아서 1장 1절을 보게 되면 바울 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영접하기 이전에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를 심히 핍박하였다 하였는데, 그 이름이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교회 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이름은 하나님의 교회 입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이름이 '하나님의 교회'라고 해서 모두 예수님께서 세우신 참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다시 한번 사도행전 20장을 봅시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행 20:28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특징은, 이름이 하나님의 교회이며 자기 피로 사신 교회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하나님의 피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너는 내 희생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유월절 희생을 아침까지 두지 말지며
출 34:25
여기의 '내'는 하나님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하나님의 희생의 피는 무엇일까요? 유월절 희생의 피, 즉 유월절 양의 피 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유월절 양의 피를 하나님의 희생의 피라고 강조해 놓으셨는데 신약성경도 마찬가지 입니다.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 26:26-28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시는 장면 입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의 포도주를 가리켜 나의 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교회 안에는 반드시 유월절 진리가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양육하시는 교회는 그 명칭이 하나님의 교회이며, 반드시 유월절 진리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수많은 교회들 가운데 이러한 조건을 갖춘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지상에 세워주신 유일한 교회인 하나님의 교회에 끝까지 거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는 여러분 모두가 됩시다!
[하나님의교회] 생명과와 안상홍님
생명과와 안상홍님
[하나님의 교회 설교] 믿음의 여정과 하나님을 감동케 하는 삶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생활을 통해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자들이 맞이한 결과를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우리의 삶의 방향성에 대한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 곧 영적 가나안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믿음의 여정속에서 하나님의 대한 원망, 불평, 불순종은 결국 멸망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감동케 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 40년을 돌리신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광야 40년 생활을 하였습니다. 광야 생활은 고난 자체였지만, 오직 천국을 향한 믿음의 길을 걷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은 대부분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광야에서 멸망 당하고 말았습니다.
[히브리서 3장 15-17절]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떄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 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위의 말씀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고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모세를 따라 나온 자들은 결국 하나님을 격노케 했던 역사적 사건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영적 광야 생활에서도 깊은 경각심을 줍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행동은 무엇이 있을까요?
우상숭배를 하거나 안식일, 유월절 등을 하나님께 순정하지 않는 자. 즉, 불순종하는 자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행동이 아니겠습니다. 이런 행동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광야에서 멸절당하듯, 우리도 영적 광야 길에서 멸절당하지 않겠습니까! 이들의 마음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없어지고, 원망과 불평에 빠진 결과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믿음 생활에서 하나님의 감동케 하는 삶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원망과 불평이 아닌 감사와 순종의 자세가 천국으로 가는 길임을 다시금 깨닫게 하며, 믿음의 여정 속에서 우리가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는 자녀들이 됩시다.
그리고 아버지 안상홍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광야 길에서 신앙생활의 목적인 천국 소망을 잊지 않게 해주심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