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 me outta here!

26_06_04

영혼이 그리워하는 진짜 고향, 천국

 

명절이나 휴가철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습니다. 오랜만에 부모님을 만나고,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골목길을 걸으며 추억에 잠기기도 합니다. 시간이 흘러 많은 것이 변했어도 고향은 여전히 우리 마음 한편에 특별한 장소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왜 사람은 늘 고향을 그리워할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이 땅이 영원한 거처가 아니라고 알려줍니다. 우리는 지금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입니다. 마치 여행자가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살다 보면 이유 없이 허전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원하는 것을 이루어도 만족이 오래가지 않고, 많은 사람들 속에 있어도 외로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영혼이 진짜 고향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어린 시절 고향집의 따뜻한 불빛을 기억하듯이, 우리의 영혼도 하나님이 계신 곳을 그리워합니다.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완전히 채워지지 않는 마음은 영원한 본향을 향한 그리움일 수 있습니다.

성경은 믿는 자들이 이 땅에서는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히브리서 11:13)

또한 사도 바울은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빌립보서 3:20) 라고 기록하며, 성도들의 진정한 소속이 하늘에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나그네는 현재 머무는 곳에 집착하기보다 자신이 돌아갈 곳을 기억하며 살아갑니다. 우리 역시 천국이라는 영원한 고향을 바라보며 살아갈 때 삶의 방향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교회 요약설교 _믿음만 가지면 다 되는 일들

안녕하세요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교회 블로그스팟입니다 

오늘은 유튜브 영상 
하나님의교회 요약설교- 믿음을 가지면 다 되는 일들 

공유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감사함으로 신앙생활을 하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께 감사드립니다 아니모!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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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닫힘 버튼, 정말 효과가 있을까?

 

엘리베이터를 타면 많은 사람들이 습관처럼 닫힘 버튼을 누릅니다.

특히 출근 시간이나 바쁠 때는 여러 번 연속으로 누르는 사람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엘리베이터에서 닫힘 버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안전 문제 때문에 일정 시간 동안 문이 열려 있도록 설정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닫힘 버튼을 눌러도 실제로는 바로 문이 닫히지 않는 경우가 있었죠.

물론 모든 엘리베이터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건물 종류나 제조사, 설정에 따라 실제로 버튼이 작동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엘리베이터에서는 버튼을 누르자마자 문이 닫히고, 어떤 곳에서는 여러 번 눌러도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버튼의 효과보다 사람들의 행동입니다.

엘리베이터에 타면 많은 사람이 목적 층 버튼보다 먼저 닫힘 버튼을 누릅니다.
심지어 버튼을 누른 뒤에도 한 번 더 눌러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죠.

결국 닫힘 버튼은 단순한 버튼을 넘어 사람들의 조급한 심리를 보여주는 작은 행동일지도 모릅니다.

다음에 엘리베이터를 탈 때는 한 번 관찰해 보세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문이 닫히기 전에 이미 손가락을 버튼 위에 올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영적 귀소본능 🐠

 

AI 이미지


귀소본능은 동물들이 자기가 태어난 곳이나 익숙한 서식지로 돌아가려는 본능을 말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연어가 수천 킬로미터의 바다를 헤엄쳐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돌아간다.

철새들이 계절이 바뀔 때마다 먼 거리를 이동하여 원래의 둥지로 돌아온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생존과 번식을 위한 놀라운 능력입니다.

 

귀소본능은 사람에게도 비슷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오랜 시간 타지에서 생활하던 사람이 명절이 되면 고향을 찾고, 힘들고 지칠 때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이나 추억이 있는 장소를 그리워하는 것도 일종의 귀소본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속해 있다고 느낀 곳에서 안정감과 위로를 얻는다고 합니다.


성삼위일체를 정확히 이해하고 가르치는 교회는 하나님의교회가 유일합니다

💜 성삼위일체 개념

성경이 가르치는 성삼위일체는 성부 여호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이 같은 한 분이라는 말이다. 셋이 하나라는 성삼위일체의 개념은 물(H2O)의 상태변화 등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액체인 물은 영하의 온도에서 고체인 얼음이 되고 100℃ 이상에서 기체인 수증기가 된다. 물, 얼음, 수증기는 각각 이름과 모양이 다르지만 구성 원소[수소 원자(H) 2개, 산소 원자(O) 1개]는 동일하다. 또한 1인 3역의 모노드라마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모노드라마에서는 배우 1명이 모든 배역을 혼자 맡는다. 각 역할은 다르지만 그것을 모두 해내는 사람은 1명이다.

성경에는 아버지 하나님(성부), 하나님의 아들(성자), 하나님의 영(성령)이 등장한다. 그러나 근본은 동일한 한 분 아버지 하나님이다.


성삼위일체를 정확히 이해하고 가르치는 교회는 하나님의교회가 유일합니다

성삼위일체를 정확히 이해하고 가르치는 교회는 하나님의교회가 유일합니다


💜 성부 여호와 = 성자 예수

교회마다 예수님이 근본 누구인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여호와와 예수는 한 분 하나님 안에 속하지만 그 안에서 별개의 위격으로 존재한다고 하는 교회도 있고, 예수님을 인간과 같은 피조물이나 천사 중의 한 분으로 여기는 교회도 있다. 여호와와 예수님에 대해 뜻과 목적이 같기 때문에 일체라고는 표현하지만 실상 여호와와 예수님은 서로 다른 분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보여주는 가장 정확한 증거는 성경이다.

성삼위일체를 정확히 이해하고 가르치는 교회는 하나님의교회가 유일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경은 신약성경이 아닌 구약성경을 가리킨다. 장차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서를 연구하지 않고는 예수님이 근본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구약의 예언서를 자세히 살피면, 그 성취를 통해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 수 있고 성삼위일체를 이해할 수 있다.

알파와 오메가
성부와 성자 모두 알파와 오메가이다.

주 하나님[여호와]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 요한계시록 1:8

나[예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 요한계시록 22:13

'알파와 오메가'는 헬라어 알파벳 첫 글자(Α)와 끝 글자(Ω)다. 성경에서 처음과 나중, 시작과 끝을 의미한다. 만일 성부 여호와와 성자 예수님이 다른 분이라면 아버지가 아들보다 먼저 존재해야 하므로 아들은 알파, 즉 시작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성경에서 성부와 성자 모두 알파이다. 그러므로 성삼위일체의 진리에 따라 성부와 성자는 근본 같은 분이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
하나님[여호와]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 디모데전서 6:15

어린양[예수]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 요한계시록 17:14

'만왕의 왕, 만주의 주'라 불릴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다. 어린양이신 예수님[4]을 '만왕의 왕, 만주의 주'라 칭한 것은 예수님이 곧 성부 여호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안식일의 주인
너희는 나[여호와]의 안식일을 지키라

- 출애굽기 31:12–13

인자[예수]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 마태복음 12:8

안식일은 여호와 하나님의 날이다. 신약시대 예수님은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셨다. 성삼위일체에서 성부 여호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이 일체라는 뜻이다.

💜 성부 여호와 = 성령
성령은 하나
성령(聖靈)은 하나님의 영(신)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표현이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과 다른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은 근본 영으로서 거룩하신 분이다.[5] 따라서 하나님과 성령이 다르면 성령이 둘이 된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다.[6]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 에베소서 4:4

그러므로 여호와와 성령은 개체로 구분지을 수 없는, 성삼위일체다.

하나님의 사정을 통달하는 성령
자기 안의 영이 곧 자기 자신이듯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다. 또한 내 안의 영이 나의 속사정을 완전히 알듯 성령은 하나님 외에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사정과 깊은 비밀을 통달하신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여호와]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 고린도전서 2:10–11

하나님의 깊은 사정을 통달하시는 유일한 존재인 성령은 곧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디모데후서 3:16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 베드로후서 1:20–21

사도 바울은 성경이 하나님(여호와)의 감동으로 적혔다고 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성령에 감동되어 성경을 기록했다고 했다. 이는 성부 여호와가 성령이기 때문이다.

💜 성자 예수 = 성령
성부 여호와와 성자 예수님이 한 분이고 성부 여호와와 성령이 한 분이듯, 성자 예수님과 성령도 한 분이라는 성삼위일체가 성립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된 분이다. 성령이 마리아의 몸을 통해 육체로 태어나신 것이다.[7]

한 분 중보자
중보(中保)란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돕는 일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성경에서는 죄로 인해 멀어진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돕는 일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신약시대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다.[8]

그[예수]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히브리서 9:15

구약시대 제사장들과 달리 예수님은 항상 살아 있는 영원한 제사장으로서 성도를 위해 간구하신다.[9][10] 이는 유일한 중보자, 예수님만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이다.
로마서에서는 오직 성령이 성도를 위해 기도한다고 한 동시에 예수님이 성도를 위해 기도하신다고 했다.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 로마서 8:26–27, 34

예수님만 행할 수 있는 중보사역을 성령이 하신다. 성령이 곧 유일한 중보자 예수님이기 때문이다.

보혜사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신할 속죄 제물로서 희생하셨다. 사도 요한은 인류를 위해 희생하신 예수님을, 하나님 앞에서 성도의 죄를 변호하는 '대언자'라고 표현했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παρακλητος, 파라클레토스)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 요한일서 2:1–2

'대언자'의 헬라어 원어는 '파라클레토스(παρακλητος)'로 누군가의 곁에 서서 변호하도록 부름을 입은 사람을 의미한다. 한글개역성경 요한1서 2장 1절 난하주에는 '보혜사'로 해석되었다. 근본 죄인들인 인류의 보혜사[파라클레토스]는 온 세상의 죄를 위해 친히 화목 제물이 되신 예수님뿐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우리의 대언자[파라클레토스]라고 했던 요한은 우리의 보혜사[파라클레토스]가 성령이라 하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요한복음에 기록했다.

보혜사(παρακλητος, 파라클레토스)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 요한복음 14:26

유일한 대언자 곧 보혜사 예수님이 바로 성령이다.


영원히 함께하시는 성령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 요한복음 14:16–20

또 다른 보혜사는 성령을 뜻한다. 성령은 영원토록 성도와 함께하며 성도 속에 거하신다.
마태복음 28장과 요한복음 6장에서는 세상 끝 날까지 성도와 항상 함께하고, 성도 안에 거하시는 분이 예수님이라고 나온다.

"볼지어다 내[예수]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장 20절)
"내[예수]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요한복음 6장 56절)
성도들과 영원히 함께하시는 예수님이 곧 성령이라는 말씀이다. 성삼위일체의 진리에 따라 성자 예수님과 성령은 한 분이다.

어린양과 성령
사도 요한은 후에 있을 하늘 혼인 잔치를 계시로 보았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 요한계시록 19:7

어린양은 예수님이다.[4] 이는 어린양이신 예수님이 세상에 다시 오셨을 때 일어날 일이다. 그때 등장하는 어린양(예수)과 아내를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에서는 성령과 신부로 표현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 요한계시록 22:17

이 예언에서는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예수님이 곧 성령이다. 예수님과 성령은 근본 같은 분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과 성령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 베드로전서 1:10–11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 베드로후서 1:20–21

구약 선지자들이 그리스도의 영에 감동되어 기록한 예언의 말씀을 가리켜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기록한 글이라고도 했다. 성자 예수님과 성령이 한 분이기 때문이다.


💜 성삼위일체 개념을 바로 알아야 이 시대 성령 하나님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교회는 성삼위일체를 올바르게 가르치는 교회입니다. 오직 성경만이 성령 하나님에 대해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교회에서 성령하나님을  영접하시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 하나님의교회 지식사전

하나님의 교회 어머니 말씀 기도, 하나님과 나누는 가장 깊은 대화

기도는 하나님과 나누는 가장 깊은 대화입니다.

어머니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오늘도 지혜를 구하고 천국의 복을 향해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교회 어머니 하나님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기도는 마음속으로든, 소리 내어든, 어떤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하나님과의 진정한 대화입니다. 솔로몬처럼 지혜롭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이루어 주신다는 약속을 우리는 붙들 수 있습니다.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하는 살아 있는 소통입니다.

 

어머니 하나님과의 교제

안상홍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들은 늘 기도의 삶을 살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눕니다. 기도는 어머니 하나님과 끊임없이 연결되는 통로이며, 그 교제 속에서 복을 받고 천국으로 나아가는 길이 열립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참된 삶입니다.

 

기도가 가져오는 축복

기도는 단순한 종교적 의식이 아닙니다. 사망과 고통이 없는 천국에 들어가는 길이며, 영생의 복을 받는 통로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축복이 기도를 통해 우리 삶 속으로 흘러들어 옵니다.

 

매 순간 기도의 삶을 살아가기

매 순간 기도의 삶을 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힘으로 모든 일을 이루어 갑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생애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이자 삶의 방식입니다. 하루하루를 하나님과의 대화로 시작하고 마치는 것, 그것이 기도하는 삶입니다.

 



딸기바나나 스무디

안녕하세요.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교회 블로그스팟입니다. 

오늘 바나나와 얼려 놓은 딸기와 우유를 믹서기로 갈아서 스무디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시원하고 맛있어요. 꿀을 약 두숟가락 정도 넣어서 갈면 더 맛있답니다.
가끔 과일은 딸기만 갈아서 이렇게 마셔요. 오늘은 바나나도 넣어봤는데 맛있네요!
건강에도 좋고 맛도 좋습니다
달콤하고 좋아요



오늘은 즐겁고 행복했던 하루였어요:)

모두 건강 유의하시고 힘내시길 바랍니다!

아니모!!